| [인터뷰] 구슬을 꿰는 눈, 공학자의 머릿속 공구통 - 김찬중 교수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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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부터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등에서 29년간 학생들을 가르치신 김찬중 교수님께서는 은퇴 후 공학전문대학원에서 ‘공학자를 위한 수학’, ‘공학자를 위한 열전달’ 등을 강의하고 계십니다.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를 덮고, 공학자들이 익숙한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발상법을 강조하시는데요, 일명 ‘내 머리 속의 공구통’이라고 불리는 교수님의 발상법이 무엇인지 들어보았습니다.
▲ 공학전문대학원 김찬중 교수님
Part 1. Ability를 넘어 Vision을 갖도록 하는 발상법
‘공학자를 위한 수학’ 강의는 교수님께서 칠판에 ‘ability’와 ‘vision’의 도식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교수님께서 매 수업 한 번도 거르지 않으시는 이 판서에는 핵심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 강의(‘공학자를 위한 수학’ )의 시작을 알리는 교수님의 판서
김찬중 교수님: 저는 학생들이 배우는 지식을 구슬이라고 생각해요. 미분, 적분, 인수분해, 하나하나가 다 구슬이죠. 학생들은 그 구슬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구슬은 꿰어야 보배예요. 그 구슬을 꿰는 게 바로 공구통이고요. 그래서 강의 첫 시간마다 이 그림을 그립니다. 위에 적은 어빌리티, 곧 문제를 푸는 능력이 구슬이에요. 능력이 있으면 답은 구하죠. K의 제곱, K의 세제곱을 풀어내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게 아래에 적은 비전입니다. "그럼 K의 4제곱은 해본 적 있을까?" 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거예요. 너무 익숙해서 의심조차 안 해본 것, 그게 고정관념이고 습관이죠. 능력만 모아봐야 흩어지면 끝이에요. 단 두 개라도 꿰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근데 보는 눈을 갖는다는 게, 창의적이 되고 싶다는 게 말처럼 쉽나요? 저는 늘 비유로 설명해요. 조깅을 한다고 다 운동선수가 되려는 건 아니죠. 그냥 몸이 튼튼해지는 거예요. 창의성도 똑같아요. 뇌를 운동시켜야 하는데, 무엇으로 하느냐, 바로 머리 속의 공구통이에요. 공구를 반짝반짝 갈듯이, 연장을 자꾸 써보는 거죠. 그래서 제 강의에선 한 학기 동안 다루는 지식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요. 미분이든 라플라스 변환이든 다 배우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거든요.
▲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패러디해 ‘머리 속의 공구통’ 개념을 재미있게 시각화한 이미지ㅣ김찬중 교수님 제공
공구통은 말 그대로 톱, 펜치, 드라이버, 송곳 같은 연장이에요. 톱을 쓸 자리, 드라이버를 쓸 자리가 따로 있듯, 문제마다 어떤 연장을 댈지 고르는 거죠. 연장이 그리 많지도 않아요.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장이 뒤집어 보기, 리버스입니다. 그 다음이 크기 바꾸기인 리사이즈와 반복인 리피트, 이 셋이 핵심이에요. 여기에 대칭인 시메트리, 닮은꼴인 애널로지, 집합인 세트까지 더하면 여섯 개가 기본입니다. 세트는 어디에 속하는지, 떨어져 있는지, 겹치는지를 보는 거고요. 그리고 쓰다 보면 확장인 익스텐션, 축소인 쉬링크, 더하기와 빼기처럼 계속 늘어나요. 더 추가될 수도 있지만, 기본 골격은 이렇습니다.
연장 ① 뒤집어 보기(reverse)
공구통의 시작은 리버스예요. 인간관계의 역지사지처럼 뒤집어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X는 3이다"는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그 당연함이 바로 고정관념이죠. 등호는 양쪽이 같다는 뜻이니 "3이 곧 X다"로 뒤집어도 되는데, 우리는 앞의 것만 무한히 쓰고 거꾸로는 한 번도 안 써봐요. 둘이 똑같은데도 말이죠. 그게 리버스입니다. 중학생이 삼각형의 수심(삼각형의 세 꼭짓점에서 각각 마주 보는 변에 내린 수선들이 만나는 점)을 배우면 "아, 수심이 있구나" 하고 끝나요. 거기서 거꾸로 "그럼 수심을 먼저 주면 삼각형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묻는 사람은 100만 명 중 한 명도 없어요. 떠올렸다면 천재죠. 학생들은 구슬, 곧 능력만 채우니까요. 그러나 수심을 먼저 주면 삼각형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또한 이 점이 무게중심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질문이에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비게이션 따라가듯 "여기가 무게중심" 하고 끝내버립니다. 그러나 사실 수학은 공구통에 있는 공구를 연습할 거리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리버스도 해보고 시메트리도 해보고 하면서요. 체육관에서 기구로 몸을 단련하듯, 아는 것에 공구통을 적용해 자꾸 풀다 보면 새로운 발견들을 할 수 있습니다.
연장 ② 크기를 바꾸기(resize) 그 다음이 리사이즈, 크기를 바꿔보는 거예요. 정주영 회장의 물막이 공사가 대표적이죠. 파도가 너무 세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는데, 컵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듯 그저 아주 큰 구멍일 뿐이라고 보면 큰 걸로 막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유조선을 가라앉혀 막았어요. 고정관념에 빠진 사람들은 거기에 덤프트럭만 들이붓죠. 막는 능력은 다들 있었지만, 사이즈를 마음대로 줄였다 늘렸다 하며 고정관념을 벗어난 사람만 답을 본 겁니다.
▲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거센 물살을 막은 정주영 회장의 유조선 공법.. 막을 수 없던 물길도 ‘그저 큰 구멍’으로 보면 된다는, 리사이즈의 대표 사례다. (사진 출처: 현대건설)
연장 ③ 반복(repeat) 세 번째 연장은 반복, 리피트예요. 똑같은 것을 거듭하는 건데, 미술에서 특히 많이 나옵니다. 점묘법이 그렇고, 쿠사마 야요이도 그래요. 호박을 크게 키우고 거기에 동그라미를 끝없이 찍죠. 크기 바꾸기와 반복, 연장 두 개를 한꺼번에 쓴 겁니다. 사람들은 예술 작품이라 하지만, 본질을 보면 결국 이 두 도구의 조합이에요. 수학에서 반복의 대표는 시그마예요. 1을 K번 더하면 K가 되고, 1부터 K까지 더하면 ½K(K+1)이 되죠. 여기까진 쉽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제곱의 합으로 건너뛰면 거기서 막혀요. 한쪽으로만 반복한 탓인데, 바느질하듯 양쪽이 맞물리려면 제곱이 아니라 'K 곱하기 (K+1)' 꼴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답이 ⅓K(K+1)(K+2)로 예쁘게 떨어지고, 그때부터는 무한히 이어지죠. 제곱에만 매몰된 게 바로 고정관념이었던 거예요.
▲ 교수님 머릿속에서 해마다 추가되고 있는 ‘공구통의 연장들’
Part 2. 일상과 예술에서 ‘보는 눈’을 새롭게 하기
예를 들어 앞에 책꽂이가 있는데, 이 책꽂이에 숨은 고정관념이 뭘까요? 책꽂이를 보면 칸이 나뉘어 있어요. 만약 한 덩어리로 트여 있으면 그건 책꽂이가 아니라 옷장이라고 부르겠죠. 책꽂이와 옷장의 차이는 결국 칸으로 나뉘어 있느냐예요. 그 나뉜 칸을 모듈, 곧 단위 하나로 본다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이걸 왜 꼭 한 덩어리 안에 붙여 둬야 하지? 작은 칸 하나를 만들어서 반복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좋은 점이 분명해요. 한 덩어리짜리 큰 책꽂이는 무겁고 모양이 고정돼 있어서 차에 싣지도 못해요. 그런데 15칸짜리를 15개의 박스로 보면, 쌓는 모양을 바꿀 수도 있고 공간에 맞춰 둘러 쓸 수도 있어요. 실제로 스페이스 박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된 사례입니다. "아, 책꽂이는 결국 칸의 반복이구나" 하고 본질을 보면 새로운 걸 계속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공구통은 수학만의 것이 아니에요. 음악에서 변주곡이, 미술에서 끝없는 반복이 다 리피트예요. 시인이 "내 마음은 호수요" 하는 건 닮은꼴, 애널로지고요. 생각을 뒤집어 보는 리버스도 미술에서 즐겨 쓰죠. 제가 특히 리버스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데, 이 많은 연장이 일상에서 저절로 튀어나오게 하려면 수학으로 연습을 많이 하면 됩니다. 그러면 길을 걷다가도 "이걸 뒤집으면?" 하는 생각이 툭툭 나와요.
행렬 곱셈은 이공계라면 누구나 배워요. 첨자가 잔뜩 붙은 그 시그마 공식, 그게 교과서의 고정관념이에요. 그런데 1년 전에 저는 여기서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졌어요. "왜 꼭 소문자로 쓸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안 묻던 거죠. 그래서 뒤집어 봤어요. 소문자 대신 대문자 A를 쓰고, 첨자를 위아래로 나눠 적는 거예요. 아래는 행, 위는 열. 두 행렬을 잇는 공통 첨자만 가운데서 만나게 하고요. 이렇게 적으면 놀라운 게 보여요. 답에 어떤 첨자를 남기느냐가 곧 답의 정체가 되거든요. 행과 열을 둘 다 남기면 원소 하나가 나와요. 열을 비우고 행만 남기면 한 줄, 즉 행 전체가 되고요. 거꾸로 행을 비우고 열만 남기면 열 전체, 둘 다 비워서 공통 첨자만 남기면 행렬 전체가 됩니다. 교과서는 원소 구하기, 행 구하기, 열 구하기를 따로따로 외우게 하는데, 이렇게 쓰면 그게 전부 한 식이에요. 비울 칸만 정하면 되는 거죠. "아니, 이렇게 쉬운 걸 왜 여태 몰랐지?" 싶었어요.
▲ 행렬 곱셈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방식. 왼쪽은 수학교과서, 오른쪽은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 ‘피토스터디’의 발상이다. ‘피토스터디’의 방식은 원소·행·열·행렬 전체가 한 식에서 갈라져 나온다.
수학자들은 이런 방식을 안 써요. 증명에는 필요가 없거든요. 저는 이걸 500원짜리 발견이라고 불러요. 수학자들은 금광,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길에 떨어진 동전은 줍지 않아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금광에 가 있어서 이렇게 쉬운 걸 못 보는 거죠. 그래서 제가 주웠어요. 행렬 곱셈은 모든 이공계 학생이 배운 거니까, 이렇게 보면 얼마나 쉬운지 꼭 알려주고 싶어요.
김찬중 교수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공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University of Michigan 기계공학 박사 -서울대학교 기계공학 석사·학사 -現 유튜브 채널 '피토스터디' 운영, www.youtube.com/@ptostudy 교수님의 더 많은 강의는 공식 유튜브 채널 '피토스터디(ptostudy)'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취재 및 정리: 정유현 학생기자 |